[극락사 쪽에서 바라본 페낭 시내의 모습]
한번 가 본 것으로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안다만의 진주'라는 페낭(Penang)은 적어도 내가 방문했던 2000년 10월 초에는 아름다운 해변도, 특별한 볼거리도 딱히 찾아보기 어려웠다.
'안다만의 진주'라고 할 때, 그 '진주'라 함은 해상무역의 거점으로서의 경제적 가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배낭을 메고 떠나는 여행(특히나 일정을 미리 정하지 않고 대강의 계획만을 가지고 가는 경우에는 더 더욱)은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주어진 시간과 조건을 가지고 취사선택을 통하여 나만의 여행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목적지를 잘못 정하거나, 그곳으로 이동하는 수단을 잘못 택하기도 한다.
방콕에서 페낭을 가기 위해 카오산로드에 있는 여행사에서 버스를 예약했는데, 방법이야 가장 쉽고 간단한 것이었지만 연이은 장거리 버스 이동으로 몸은 녹초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쿠알라룸푸(K.L.) 야시장에서 먹은 피냉락사(Penang Laksa)에 반한 나로서는 Penang Laksa의 본 고장을 찾아 원조 Penang Laksa를 직접 맛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페낭을 찾는 길은 어느 정도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게다가 바투페링기 등의 유명한 해변이 있으니, 다른 볼거리가 없더라도 적어도 바다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 락사(Laksa)에 관한 정보는 Wikipedia의 내용을 참고하세요. http://en.wikipedia.org/wiki/Laksa
[페낭으로 가는 Ferry 안에서]
[실망스러웠던 바투 페링기(Batu Ferringhi) 해변]
버터워스(Butterworth)에서 페리를 타고 페낭으로 들어섰다. 버터워스에서 페낭으로 가려면 페리(Ferry)를 타거나(5~10분 소요), 육상교통수단을 이용해서 페낭교를 건너는 방법이 있다. 페리요금은 버터워스에서 페낭을 건너는 요금(80센트)만 받고, 페낭에서 버터워스로 오는 건 무료다.
우선은 버스를 타고 바투페링기 해변이 있는 곳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려서 얼마를 가자니, 여행안내책자에서 나온 것처럼 원숭이들이 전신주 같은 기둥 주변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숙소를 잡고, 잔뜩 기대를 하고 해변으로 향했는데... 멀리서 보기에도 바다색이 영~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에 가 보았지만 가까이서 본 바다는 탁했고, 가끔씩 큼직한 해파리가 둥둥 떠 다니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수영을 하려던 생각은 아예 접어 버렸다(지중해가 있는 모나코에서는 12월에도 불구하고 바다로 들어갔던 사람이란 걸 감안하면, 해변의 상태가 어떠했을까 가늠이 될 듯).
[페낭 시내의 관음사]
그래도 관광객이 많은 곳이라서 밤에는 길거리에 야시장이 펼쳐졌는데, 주석 가공품이나 수공예 관광상품들을 구경하며 무료함을 달랠 수 있었다. 그렇게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누군가가 길에 버려둔 아기 고양이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서양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얼마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는 남편과 함께 여행중인 네델란드 사람이었고 동물을 좋아해서 버려진 아기 고양이들이 불쌍해 눈물을 흘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아내 옆에서 있다가 결국 우유를 사와서 고양이가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한 동안 불쌍한 아기 고양이를 버린 사람들을 성토하고 나서야 그녀는 조금 진정이 되는 듯 했다. 이곳 해변과 페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말레이시아 여행의 선배인 그들에게 다음 여행지로 어디가 좋겠는가를 물어보았다. 자신들은 카메론 하이랜드를 다녀왔는데 날씨도 좋고, 괜찮으니 가보라는 추천을 해 주었다. 그래서 다음 목적지로 카메론 하이랜드가 정해진 것이다.
어쨌든 이곳에 온 본전을 뽑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음날은 피냉락사(Penang Laksa)를 맛 볼 수 있는 극락사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극락사까지 올라가려면 4~5백 미터(어쩌면 더 될 것 같은데, 거리를 잘 가늠할 수가 없다) 정도의 좁은 골목길를 올라가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예전에 사하촌이라고 해서 큰절 밑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곳은 큰 절로 가는 길에 상점들이 자리를 잡고 일렬로 뻗어 있고 그 좁은 골목 위로는 천막 포장이 쳐져 있어서 비와 햇볕을 막아 주었다.
특이한 것은 그곳 상점들에서 파는 기념품중에 응가 모양의 상품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처음에 그걸 보고는 웃음이 나와서(이걸 관광상품으로 만들고, 판다는 것과 그걸 사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우스워서) 한참을 낄낄거리며 오르막길을 걸었다.
응가 이야기만 나오면 웃음보를 터트리는 어린 아이들처럼 나도 철이 없긴 없나보다.
[극락사 출입구]
[극락사의 석조대전]
어느덧 상점들의 좁은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서 극락사의 초입에 접어 들게 된다. 그곳에는 거북이들을 많이 키우는 곳이 있는데 50~100여마리 정도 될 것 같은 거북이들이 냄새를 풍기면서 그들만의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南無阿彌陀佛이라고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크게 쓰여진 한문과 極樂寺라고 쓰여진 입구의 현판을 보면서 잠시 이곳이 말레이시아가 아니라 중국의 어디쯤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들게 했다.
극락사는 입구와 본전의 모습만이 전통이 있는 절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을 뿐, 새로 짓고 있는 대전은 돌기둥으로부터 벽도 돌로 만들어서 거기에 일일이 조각까지... 나의 눈에는 그저 돈잔치로만 비춰진 그들의 불사(佛事)는 절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큰 매점 때문에도 이방인인 나에게 더 그런 인상을 주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상업화의 극치를 보는 듯한 극락사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날로 화려해져만 가는 절의 외형이 왠지 정신수양의 도량과는 거리가 사뭇 멀어 보여졌다.
페낭에 와서는 계속 실망의 연속이라, 극락사 본전에서 보였던 커다란 불상이 있는 그 위의 또 다른 사찰도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관음상이 있는 그 사찰은 현재는 다 지어졌겠지만, 당시에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절의 입구를 찾지 못해서 땀 꽤나 흘리며 헤멘 기억이 난다. ㅠ.ㅠ 이곳도 어찌보면 돈잔치 같아 보이는 곳이지만, 관음상의 미소만큼은 자애로와 보였다.
지치고 실망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그래도 산 밑의 길가에는 원조 피냉락사를 파는 길거리 음식점들이 몇 군데 있는데... 싱가포르 사람들 중에는 극락사를 오르는 입구 부근에서 파는 Penang Laksa를 맛보기 위해 일부러 비행기를 타고 이곳을 방문하기도 한단다. 위생적인 문제는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원조 피냉락사의 맛은 그 동안의 고생을 보상해 주는 듯 했다. 물론 나를 잘 생겼다고 추켜 세워주셨던 K.L. 야시장 아주머니께서 파시던 락사(Laksa)의 맛도 훌륭했지만 말이다... ^^;
페낭에서의 이야기는 페낭 시내에서 밤에 핫도그를 먹으러 나왔다가 만났던 아리랑을 잘 부르는 젊은 핫도그 아저씨 외엔 그 다지 좋거나 재미난 기억이 없어 아쉽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가 사는 삶처럼 여행의 한 모습이고...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분들중 자신의 여행 경로에서 페낭을 지우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찾거나 느끼지 못했다고 해서 페낭이 별다른 의미나 가치가 없는 곳으로 전락해야 하는 건 아니니... 선입견... 특히나 나쁜 편견을 먼저 가지고 접근하지 않았으면 싶다.
[덧말 1]
페낭 섬에서 우뚝 솟아 있는 '콤타(COMTAR)'는 본토인 '버터워스(Butterworth)'로 건너는 페리를 타는 선착장에서도 멀지 않고, 배낭여행자들의 숙소가 모여있는 '리브 츌리아(Lebuh Chulia)'에서도 멀지 않습니다. 리브 츌리아에서는 항주 호텔, White House Hotel, Inland City Hotel 부근보다는 그 뒷편으로 새로 생긴 숙박업소들이 더 괜찮았었는데, 7년여가 지난 지금은 어떨지...
[덧말 2] 2001.6.24. 사진과 함께 대강의 이야기만 올려 놓았다가 2008.3.16.에서야 마무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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