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유럽

유럽, 이탈리아 로마(Rome) - 그 이야기의 시작

engbug 2017. 12. 4. 21:34

 

 

베네치아를 지나 남쪽지방인 나폴리를 거쳐서 살아있는 전설의 도시 로마로 들어온 건 1993년 12월 24일,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이 자리한 도시라서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대단도 안 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의외로 도시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분하고 어떤 특별한 기운을 느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점이 있다면 여느 도시보다 잠자리를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었다. 특히나 예상보다 숙박료가 터무니 없이 비싼 거 있지..!! 그때는 그냥 도시 분위기만 보고, 그 이유를 알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크리스마스 이브 자정미사 때문에 그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의 차분함 뒤엔 은근하지만 분주함이 녹아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테르미니역에서 내려 여기저기 게스트하우스를 돌아다녀봤지만, 예상한 가격으로 머물 수 있는 곳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를 어쩐다. '차라리 근교에 있는 다른 도시에서 머무르며 이곳을 왔다갔다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볼거리 많은 로마에서 이와같은 방법은 그리 바람직한 것이 되지 못했다.

 

 

왜냐면... 대부분의 박물관이나 명소들은 폐관시간이 저녁 5시전후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가능한 가격이 저렴한 곳을 찾아 보기로 하고 가격을 흥정하는데 가장 일반적인 방법 중에 하나를 - 한 곳에서 오래 머물기로 하고 할인혜택을 받는 것 - 쓰기로 했다.

 

테르미니 역에서 가까운 Morgana 호텔... 처음엔 별 4개짜리 호텔이라는 외관에 눌려 뒤도 안 돌아 보고는 다른 곳을 향해 발을 돌렸는데(왜냐면..여행안내책자에는 이곳의 숙박료가 비교적 싸게 나왔는데.. 실제로 보니 별4개라는 사실에 그만 기가 죽어 버린 것이었다), 몇 군데 게스트하우스나 B&B 를 운영하고 있는 곳을 다녀봐도 책자에서 나온 것과 같은 가격으로 잠자리를 제공하는 곳은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물어나 보고 또 다른 곳으로 가보자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 프론트로 향했다.

 

프론트를 보는 아저씨는 지긋한 연세에 약간은 자상해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숙박업소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은 바로 이거다...

"Do you have any vacancy ?" "방 있어요..?"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아무리 숙박료가 싸 건, 비싸 건.. 일단 방이 없으면 그림의 떡이니까... ^^

 

다행히 빈 방은 있었지만...

"How much for a night ?" "하루 묵는데 얼마예요?"

 

라는 질문에 처음엔 조금 가소롭다는 듯이 그가 부른 액수는 자그마치... 뽀글뽀글~

 

이건... 다른 곳에서 적어도 3일은 버틸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 아저씨... 제 정신이 아니십니다요..'

 

하지만, 그래도 뭔가 잠자리를 구하는 문제에 대한 힌트라도 얻어 가지 않으면 로마에서의 숙박해결는 커다란 부담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처지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사정이라도 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행안내책자에는 이곳의 요금이 그렇게 비싸게 나와 있지 않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 말에 아저씨는 그럼 한번 책자를 보자며 손을 내밀었다. '그럼 보시와여~'... 하지만 한글로 쓰여진 여행책자를 볼 수 있을 리는 만무했고.. 다행이 호텔이름과 주소.. 그리고 가격표시가 영문으로 되어 있어서 우리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 되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그 가격은 한 마디로 어처구니 없는 것이라는 얼굴 표정을 지어왔고, 그런 모습에 더욱 난감해 진 건... 우리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멀리 동방에서 배낭여행 온 학생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저씨는 호기심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여권을 보여 줄 수 있겠냐는 말에, 선듯 내 여권을 내밀었다.

 

'학생이냐..? 어디 어디를 다녀오는 길이냐..?'라는 질문을 하시다가는 갑자기 나에게 내일이 생일 아니냐고 했다. 그렇다 나의 공식적인 생일은 12월 25일.. 그래서 그렇다고 했더니, 얼굴에 미소를 띄우시면서 그럼 3일 묶는 조건으로 하루 50,000리라에 2인실을 쓰겠냐고 하는 거다, 물론 아침식사도 포함해서..... 이건 아까 불렀던 가격보다 25%는 낮은 가격이고 근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들보다 좋은 조건이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나의 로마여행은 운 좋게 시작되었다. 이런 행운은 로마를 여행하면서 계속해서 이어져 갔다.

 

 

 

 

콜롯세움에선 우리나라에서 오신 분들과 그 분들의 일행을 만나서 책에도 나오지 않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한국인 식료품점에서 꿈에도 그리던 고추장을 사서...  나머지 여행기간 동안의 인생고 해결에 청신호를 밝힌 곳도 이곳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테르미니역에선 자기들은 오늘 로마를 떠난다며 남은 버스표를 건내주며 여행 잘 하라고 격려해 주던 우리나라 형, 누나들을 만나 가슴 뿌듯하기도 했고, 바티칸 박물관에선 한국인 전문 가이드를 만나 실속있는 박물관 견학을 하는 행운까지
잡았다.

 

나폴리에선 소매치기와 유쾌하지 않은 접촉(다행히, 피해본 것은 없었지만)을 해서 약간은 긴장도 되었는데...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게.. 인생살이라는 말처럼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있으니 이렇게 좋은 여행의 선물들이 하나 둘.. 그 포장을 열고 내 앞에 펼쳐지는 거다.


 

 

이 글은 개인 홈페이지(http://www.geoever.com)에 올려 놓은1993년 12월 1일부터 1994년 1월 8일까지의 배낭여행 이야기를 옮겨 놓은 것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