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98년 태국 배낭여행 중 방문했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사진은 2014년 방문 때 찍은 것을 활용했습니다.
2014년 방문 내용은 아래 글을 참고 바랍니다.
2017/10/15 - [해외여행/태국] - 태국, 아유타야(Ayutthaya) 유적지
'야유타야(Ayutthaya)'라고 영문 표기를 하는데, 이곳 사람들은 '야유티아(Ayutthia)'라고 부르곤 한다.
이곳은 방콕을 돌아볼 때, 함께 보려고 남겨둔 곳이었다. 왜냐면, 방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숙소를 한 곳에 정하고 난 후에 움직이는 것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편안하기 때문이다.
수코타이에서 방콕으로 돌아온 것은 3월 29일 새벽이었다.
카오산 로드에 있는 Sawasdee에 방을 잡은 다음 오전에는 비만멕 박물관을 돌아보고, 오후에는 주말시장인 Chatuchak Weekend Market을 구경하며 하루를 보냈다.
이곳의 주말시장은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하고 별다를 게 없는 그저 그런 곳이었다.
치앙마이에 있는 야시장에서 만난 경희님과 현진님이 하도 이곳을 자랑해서 기대를 가지고 일부러 구경을 갔는데.., 내가 느끼기엔 오히려 야시장의 그것보다 분위기나 다양함 등... 여러모로 못하다고 생각되었다.
시장의 중앙부에 위치한 회교사원 모양의 시계탑은 이곳을 찾을 때.. 이정표로 삼을 수 있을 만큼 특이했다. 마침 환전을 하지 않아 돈이 모자랐는데, 다행이 시장 중앙부에 군인은행이 위치하고 있어서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환전을 할 수 있었다.
아무튼... Sawasdee에서 묵으며, 31일쯤 조금은 편안하게 이 곳에 있는 여행사에서 450Baht로 '야유티아' 일일 투어를 하려고 했었는데... 그 계획을 바꾸어 놓은 사건은 그 다음날인 30일 아침에 일어났다.
9시경... 아침을 먹으러 Sawasdee 레스토랑으로 내려왔다. 식사를 한 다음, 가까운 '왓 포', '왓 아룬'을 시작으로 사원들을 돌아볼 참이었는데... 그만 그 날의 일정 전체가 바뀌는 계기가 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아침식사로 'Tom Yam Kai'를 주문했는데.. 닭고기가 없다고 해서 쇠고기로 해 달라고 했더니 30분 정도 있다가 스프가 나왔다. 그런데 계산서는 국물에 담가졌다 나왔는지.. 젖은 듯 엉망이었고.. 게다가 밥은 20분이 다 되어도 나오지 않는 거다.
조금씩 머리카락이 서는 듯 싶더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침 그날 서빙을 보는 사람은 내가 이 곳에서 매일 대하던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음식 값을 치루고,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다른 곳에 방을 구하러 나왔다. 일일 투어고 뭐고 여기서는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을 만큼... 내 기분은 엉망이 되어 버린 거다.
결국, 홍익인간 옆에 있는 Orchid Guest House에 방을 얻고... 곧바로 짐을 쌓아 들고 나왔다. 내가 '홍익인간'이나 '만남의 광장'을 이용하지 않은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우선 '만남의 광장'은 내 분위기는 아니었고... '홍익인간' 역시 매일 어울려 술이나 마시는 분위기 같아서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내 행동은 잘 했다고 생각된다.
암튼 ANA(All Nippon Airways)에 전화 해서 reconfirm을 하고 구경삼아 '홍익인간'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에 한 우리나라 여자가 대꾸를 했다. 그녀가 바로 문주누나였다.
'그래.. 차라리 포기할 껀 깨끗이 하자'라는 생각을 하니 급할 것도 없고, 생각지도 않은 시간이 나에게 덤으로 주어진 듯 느껴졌다.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 주인마냥 앉아서는 한 달만에 접해보는 우리나라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그녀가 내게 와서는 이 곳에 있는 분이냐고 했다. 그게 그녀와 나와의 야유티아 유적지 여행의 시작이었다.
이런 저런 몇 마디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주누나가 야유티아로 간다는 말에 우린 동행하기로 했다. 아침엔 포기했던 '야유티아'행이 오히려 계획보다 하루 앞당겨서 가게 된 것이다.
타마삿 대학 앞에서 에어컨 버스 7번을 타고 회람퐁 역으로 갔다. 이왕 가기로 한 거... 우리에겐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시계는 벌써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15Baht씩 주고 기차표를 산 다음 기차에 올랐다. 가는 도중에 태국에선 처음으로 시원하게 장대비가 내려서 더운 줄 모르게 야유티아에 도착했다. 도착한 시간은 2시 30분.
조금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옆에서 내릴 곳을 알려 준 외국인, 그는 야유티아에서 2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이 문제없다는 말에 안심하며 기차역에서 나와 그 앞에 있는 선착장 에서 2Baht로 강을 건넜다.
거기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Wat Phra Si Sanphet'까지는 삼륜차(여기선 이걸 '삼로'라고 함 - 다른 곳에서는 인력거를 삼로라고 하는데..)로 60바트... 옆에서 끈질기게 150Baht하는 1시간 투어를 권하는 여자의 유혹을 뿌리치고, 우린 충분한 시간을 두고 돌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그 사원 근처에 가 보고 싶던 곳들이 모여 있었던 탓에 짧지만 그런데로 괜찮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Wat Phra Si Sanphet'은 처음 우통(U-Thong)왕 시대에는 궁전으로 쓰였다가 그 후에 왕궁이 좀 더 북쪽으로 옮겨지면서 사원화 되었다고 한다. 22개의 문과 8개인가 하는 요새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중심에 있는 3개의 커다란 체디와 주변에 남은 유적지가 마치 문화의 파편들 처럼 흩어져 있을 뿐이다.. 그래도 이곳이 그래도 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이 되어 보전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인 듯 싶다.
체디에도 올라가 보고, 한가하게 문주누나와 떠들며 주변을 돌아본 뒤에 이곳을 나왔다.
이 사원의 바로 옆으로는 지금까지 태국에서 본 불상 중 가장 큰 좌불이 있는 'Wihan Phra Mongkhon Bophit'이 위치해 있었다.
처음에 밖에서 보았을 땐... '누워 있는 부처'의 모습으로 착각했을 정도로 좌불의 크기는 상당히 컸다.
거의 높이가 7-10미터 정도는 충분히 될 듯 싶다. 이 불상이 태국에서 제일 큰 청동불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것이라는데.. 외형은 금칠이 되어 있어서 과연 청동불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다음 간 곳은 'Wat Phra Si Sanphet'에서 보이는, 높다란 연봉 모양의 프랑(?)이 인상적인 'Wat Phraram'이었다. 25에서 30여 미터는 되어 보이는 프랑은 2/3지점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고, 그 안에는 예전엔 예배당으로 쓰인 듯 해 보이는 공간이 있었다.
문주누나와 함께 올라가 보니 주변의 모습들이 제법 잘 보이는 전망대 같이 느껴졌다. 피라밋에 오른 듯... 사방을 내려다 보며, 잠시 넋을 잃은 사람처럼 멍한 순간이 지나고... 우린 다시 프랑에서 내려왔다. 사원을 나오는 길에 코끼리를 타고 앞으로 지나가는 일련의 사람들이 보였다. 관광객들이 코끼리를 타고 도로 옆을 지나가는 거였다.
문주누나한테는 잠시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부지런히 그들이 오는 쪽으로 달려가서 어디서, 얼마에 코끼리를 탈 수 있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치앙마이에서 트레킹을 하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코끼리 타기가 트레킹 중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거 하나 때문에 그 많은 시간과 경비를 지출한다는 것이 너무 아깝게 느껴져서 트레킹은 포기하고 다음에 코끼리를 탈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자 했는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오늘 그 떡을 본 것이다.
코끼리를 탈 수 있는 곳은 이 사원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고.. 우린 사원의 매표소를 관리하는 아저씨의 친절 덕분에, 바이크 뒤에 타.. 힘 안들이고 재미나게 그곳에 갈 수 있었다.
200Baht에 둘레 100미터 정도 되는 운동장을 2번 도는 것과 400Baht에 'Wat Phra Si Sanphet' 부근까지 갔다가 오는 것이 있었는데... 우린 200Baht 코스를 택했다. 타 보는 맛이지... 오래 탄다고 좋은 건 아니니까...
좀 전에 길에서 코끼리 조련사에게 어디서 코끼리를 탈 수 있는 지 물어볼 때 그가 타고 있던 코끼리가 코로 막 내 손을 잡고... 건드리고는 해서 더욱 친근감이 드는 코끼리를 문주누나와 둘이서 양쪽에 나란히 앉아 탔다. 처음엔 많이 흔들거리더니 차츰 타 볼만 한 것이 제법 재미있었다. 아마도 코끼리에 탔을 때 느낄 수 있는 높이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2미터 정도 지상에서 흔들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란 색다른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가까이서 보니 코끼리는 온 몸에 듬성듬성 털이 많이 나 있었다. 문주누나가 코끼리가 작다고 불평을 하길래, 아프리카 코끼리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암튼 코끼리를 타고 나니 시간이 벌써 4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는 아직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우리는 상처받은 위장을 달래기 위해 'Wat Phra Si Sanphet'앞 상점가 거리에 있는 국수가게에서 파는 국수를 사 먹었다. 마늘, 채를 썬 무우, 땅콩, 레몬즙, 고추, 작은 게젖... 등등의 양념이 들어간 국수는 냄새는 비리지만 맛은 꽤 훌륭했다. 환타도 처음으로 비닐에 담아서 마시고... (여기서는
음료를 비닐 봉지에 담아, 얼음을 같이 넣어서는 입구 쪽으로 해서 고무줄로 묶어손잡이를 만들어서는 빨대로 먹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다).
[중앙에 보이는 체디 뒤로 보이는 프랑이 문주누나가 이야기 했던 그 프랑임]
그렇게 점심을 해결한 다음 기차역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Wat Mahathat' 을 들러 보고 가기로 하고, 우린 삼로 요금의 흥정을 시작했다. 처음엔 90Baht를 불러서 나는 그곳이 기차역 가는 도중에 있고 거기까지는 거리가 얼마 안 되니까 그렇게 낼 수 없다며 70Baht를 제시했고, 결국 그렇게 하기로 되었다. 'Wat Mahathat'은 나무뿌리인지 줄기인지에 칭칭 감긴 불상의 머리가 있는 곳으로,
'핏산눌룩(Phisanulok)'에 있는 'Wat Yai'에서 본 것처럼 불탑이나 본당의 주변을 불상들이 둘러쌓아 있었다. 물론 지금은 불상의 머리부분이 모두 잘려 나가고, (버어마... 지금의 미얀마가 침략했을 때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함) 목 없는 불상의 군상이 무너져 내린 거대한 불탑의 모습과 어우러져 세상의 허무함을 말없이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5시 30분이 넘었는지 석양이 지는 사원의 모습 너머로 큼지막한 붉은 태양의 모습이 보였다.
이 사원의 건너 편에는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듯한 'Wat Rachaburana'가 있었다.
문주누나는 그 프랑의 모습을 보더니 꼭 파리에 있는 노틀담 사원처럼 보인다고 했다. 언뜻 보니 프랑과, 여기에 이어지는 건물의 모습이 정말 신기하게 닮은 꼴이다.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대강은 야유티아를 돌아보게 된 것, 그것도 예정했던 것보다 하루 앞 당겨서,은 이런 뜻하지 않은 인연의 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시 30분 경에 야유티아에서 기차에 올랐다. 방콕에는 8시 30분에야 도착해서 회람퐁역 건너편에서 다시 에어컨 버스 7번을 타고 카오산 로드로 돌아온 것은 9시30분...
계획하지 않은 일들로 인해 여행의 또 다른 맛을 남기고, 야유티야는 내 젊은 날의 추억 속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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