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쿵저러쿵

초등학교 음악시간...

engbug 2018. 3. 14. 21:09

오늘은 오랜만에 비 속의 외출을 했다.

     

은행에 갈 일도 있고 얼마 전 대화방에서 국악 작곡을 전공한다는 여고생으로부터 추천받은 '젊은 산조'라는 국악 앨범도 살 겸, 휴대용 시디플레이어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클래식이라면 진저리를 치던 내가 클래식이 좋아진 건 1 - 2년쯤 전부터인 거 같다. 괜히 먹고살만한 사람들 건방 떠는 음악 같아서 거부감이 들었던 게 사실인데... 언젠가부터 그 음악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다. ( 모를 일이다....)

     

'아름다운 청춘'의 배경음악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음악에 관한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아무튼 요번에 수능을 보았다는 그 여학생으로부터 우리의 고유 음계는 '궁상각치우'가 아니고 12율 이란 것도 배우고, 내친김에 연주곡으로 들을 만한 앨범으로 '젊은 산조'라는 걸 소개받게 되었던 거였다. 

     

'젊은 산조 4'를 샀는데 잘 모르는 나도 듣기에 꽤 괜찮다. 특히 해금산조는 파가니니의 어느 바이올린 곡 못지않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앨범 제작에 일본인들이 참여했다는 거다.. 물론 기술적인 부분에서 이기는 하지만... 

     

     

오늘 일을 생각하다가 보니... 언젠가 끄적였던 글이 하나 생각났다.

     

 

고운이가 피아노를 배운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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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엄마랑 TV를 보며 식사를 하다가 " 요즘 TV는 시시한 것만 해. 예전에 '여로'할 때가 참 재미있었는데...  OO이가 3 살이었지 아마..."라며 엄마가 지난 이야기를 꺼내 놓으셨다. 요즘 들어 부쩍 옛 일을 추억하는 일이 잦으신 거 같은 우리 엄마.

          

그땐 우리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서 '여로'라는 드라마를 보려면 옆집에 가서 봐야 했단다. 옆집 아주머니는 세 살배기 인 내가 노래 부르는 걸 꽤나 귀여워했다고 했다. 그래서 '여로'가 시작되기 전에 " 아이고 우리 OO이, 노래나 한번 해봐라."라고 주문을 하곤 하셨고, 그때마다 어린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 '빨간 마후라'를 불러대곤 했단다. 어릴 적부터 내가 최소한 음치는 아니었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순간이다.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어느 날은 선생님이 우리에게, 며칠 후 음악시간에 합주를 할 테니까 각자 미리 자신이 연주하고 싶은 악기를 하나씩 준비해 두라고 하셨다. 

 

60여 명이 되는 한 반 어린이들이 함께 연주를 하면 멋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한 껏 부푼 기대가 실려 있었고, 그 말에 철 모르는 나도 덩달아 흥분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드디어 예정된 그 며칠이 바로 내일로 다가왔을 때, 나는 작전을 개시했다. 미리 집에 이야기를 하면, 이것저것 따져 보실 거고, 이런 일엔 급작스럽게 엄마를 다그치는 것이 좋을 거라는 나의 영악함이 고개를 든 것이다. 머릿속엔 내가 멋진 악기를 가지고 갔을 때에,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과 선생님의 흐뭇한 표정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한 컷 한 컷 지나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떳떳하게, 항상 학교에서 하는 일에는 가능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엄마였기에, 내일의 학습내용과 준비물에 대한 브리핑에 가까운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리고, 은근히... 미니 오르간이나 실로폰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고서..

          

          

하지만 정작 내가 가지고 갈 수 있는 악기란  두꺼운 철사를 휘어 놓은 것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 트라이앵글이 고작이었다.  트라이앵글을 치는 쇠막대가 달아날 까 봐서 그나마 놋끈으로 2중 3중 칭칭 동여매어 소리나 제대로 날까 의심스러운 그 악기는 정말 ' 틱틱'하는 짧고 탁한 경금속의 마찰음만을 낼 수 있는 것이었다.

 

악기 본연의 기능과는 상관없이 단지, 준비물이란 구색 만을 갖출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한.. 그래도 내일 준비물을 준비해 오긴 했다는 내 체면을 살려 줄 그나마의 구세주...

          

다음 날... 어제에 자신의 의도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우리들의 모습을 보신 선생님의 얼굴은  실망보다는 분노가 베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큰 죄나 진 사람처럼 나는 또 왜 그리 불안했는지..

선생님은 쭈~욱 한 바퀴, 학생들의 자리를 돌아보며 그들이 준비한 악기를 살펴보셨다. 몇몇은 준비하지 못했고,  대부분은 탬버린, 못하면 어제 사서 그런지 아직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 트라이앵글이었다. 꼼꼼하기도 한 선생님은 내 자리를 둘러보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어이없는 표정을 보는 것이 때로는 사람을 얼마나 주눅 들게 하는 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선생님의 얼굴엔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  친절하게도 내 빛바랜 트라이앵글을 손수 드시더니 '틱틱'... 명품의 소리를 확인해 주셨고, 본체와 부속품이 이탈하는 걸 방지하기 위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보안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내 악기는  주인의 낯을 살려주는 일엔 전혀 관심이 없는 듯이, 더욱 어색한 소리를 내버렸다. 

          

" 소리도 제대로 안 나는 이걸 악기라고 들고 왔니...?" 

     

' 그때 선생님은 알고 말씀하신 걸까?  이게 나에겐 집에서 가져올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한 바퀴 순시를 마친 선생님은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하셨다.

          

너무나 실망했다고. 그렇게 수업 의도를 설명하고, 당부를 했는데도 고작 이 정도밖에 성의를 보여주지 못하느냐고...

그 목소리엔 제법 울분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  잔뜩 진지해 있었다.

          

부모님한테 잘 말씀을 드렸다면 이렇게 밖에 준비해 올 수 없었겠느냐, 너희들이 배워보려는 의욕이 전혀 없다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니냐, 너희가 제대로 설명을 드렸는데도 부모님이 이렇게 밖에 준비를 안 해 주셨다면  그건 자녀교육에 대해 전혀 관심과 투자를 할 의사가 없다는 거 아니냐, 이런 상태에서 내가 너희랑 무슨 교육을 하겠냐.... 이젠 회의론으로 까지 발전해 버린 선생님의 일장 연설 앞에 은근히 그가 미워지기 시작한다. 

          

난들 멋진 악기를 가져오고 싶지 않았겠는가,  이걸 준비물이라고 들고 학교로 향하며 잔뜩 볼벤 자식의 모습을 보며 불안하고 안쓰러워하는 어머니는 그렇게 하기 싫어서.. 자녀 교육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게 했겠는가... 자신이 못 배운 게 한이 되어서 무엇인지도 모르는 학교 일에 노심초사 마음 쓰기 바쁘신 우리 어머니가...

          

암튼 열악한 음악 환경 속에서도 내가 음치가 되지 않은 것이 여간 다행스럽고 대견한 일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을 그때 아무것도 준비해 올 수 없었던 그 아이가 본다면.....

          

때때로 무언가를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진 것이 비교될 때에는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다.  그 이전까지는 그런 부족함을 특별히 느끼지 못하고 나름대로 제법 큰 행복을 가슴에 안고 살았는데...

          

한 가지 반찬만 가지고 식사를 해야 하는 사람이 매일 질리게 이것만 먹는다고 불평을 하는 것은, 맨 밥을  먹어야만 하는 사람에겐 반찬투정을 하는 것 밖에 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이 반찬 하나 없이 맨 밥을 먹어야 함을 한탄하는 사람은, 그나마 밥이 없어 끼니를 걸러야 하는 사람에겐 밥상 앞에서 딴청 부리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 거 아닐까....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보다, 누구와 무엇을 하는가에 더 큰 의미를 두고... 

내가 얼마나 가졌는가 보다, 가지고 있는 걸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가에 마음이 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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