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쿵저러쿵

고진감래(苦盡甘來)

engbug 2018. 2. 25. 21:56

1.  습성에 관한 연구...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나름대로의 질서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 중엔 이런 규칙을 연구해서는 누구누구의 법칙이니, 무슨 무슨 원리니 하는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물론, 이런 질서에 있어서도 예상외의 돌발사태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사람들은 여기에 불확실성이라는 단어를 가져와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각각의 규칙은 상호 조화 속에서 고유의 영역을 보전하려는 성질을 가진다.

 

바로 이러한 이유가 내 일상 속의 작은 이야기를 습성에 관한 언급으로 시작하려는 사유이기도 하다.

 

 

2.  사냥 이론

 

동물, 식물, 곤충... 그 종(種)이 무엇이든... 생명을 영위하는 장소가 어디든, 그 크기가 크던 작던.. 각각의 생물은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려 하고, 확보된 영역에 대하여 때론 그 목숨을 다해 지키려 애를 쓰기도 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우린 그 생물의 다음 행동이나, 그가 위치할 다음 장소를 예상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단서... 이러한 원리는 사냥에도 응용된다.

 

그가 다니는 길목을 지키는 것.., 그 길 위에 덫을 놓는 것.. 이런 것들이 사냥꾼들에게는 최소한의 기본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잡는 자가 아닌 잡히는 자... 포식자(捕食者)가 아닌 희생자의 입장에서 보면 상대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이 자신을 보다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는 비결 아닌 비결이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토끼가 이와 같은 이치를 깨닫게 되는 날.. 

호랑이는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풀을 뜯어야 할 것이고, 초목들은 걷고 뛰는 기능을 발달시켜 종족의 보존을 꾀해야 할 지도... ^^  (또 모르지... 정말 그럴지..)

 

 

3.  가장 불행한 생명체 - 인간

 

대부분의 동물이나 곤충이 주어진 환경에 주관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비하여, 인간은 사회라는 집단생활을 통해서 부여되는 제2의 환경에 의해 많은 구속과 지배를 받는다.

 

한번 생각해 보라... 이 세상 어느 생명체가... 인간만큼,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가를... 

 

 

4.  고진감래...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주변 정리가 대충 되었으니 나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4 반세기 이상을 인천에서 살아온 나를... 

 

동물의 개념으로 본다면... 나의 영역은 분명 인천.. 그중에서도... 극히 한정되었던 나의 활동 범위를 고려한다면, 나는 지나쳤던 길을 수년간 반복적으로 지나고 또 지났을 것이다.  만약, 내가 사냥의 대상물이라면 이는 상당한 위험이 내재된 생활 습관이라 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생명체 - 인간.   나 역시 그 예외는 아니었다. 주어진 환경... 

 

5월이 지나면서 나에게도 주어진 환경에 변화가 생겼다.  덕분에 나의 활동 영역이 이전의 그것보다 넓고 다양해진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내 생활의 주무대인 인천의 서쪽 경계는 동인천... 예전엔 동인천을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건만, 요즘.. 중구청과 인천역 사이에 소규모로 형성된 차이나 타운을 종종 지나는 것도 이런 주어진 환경의 변화에 기인한다.

 

전 세계에서.. 유태인과 화교가 집단적으로 뿌리를 내려 정착하지 못한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단다.  그나마,  인천은 항구도시로 중국과의 거리가 다른 곳에 비해 가깝다는 특성으로 인해 예전부터 심심찮게 화교나 그들이 사는 집을 볼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이곳처럼 역사(?)도 비교적 오래되었고, 화교 학교까지 있는 곳은 인천에서도 흔치 않다. 이제는 화교의 상권이라고 해 봐야 전통 중화요리를 판다는 요릿집들이 대부분인 이곳을 지날 때면.. 그래도 중국풍의 이국적인 마을 모습과 함께, 생생한 중국어를 들을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이 길을 지나게 되지 않았던들.... '고진감래(苦盡甘來)'...

 

'고진감래(苦盡甘來)' =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공식처럼 머릿속에 암기된 흔하디 흔한 속담쯤으로 남아 있을... 이 4자 성어가 삶에 관한 또 다른 고민으로 다가온 건... 바로 이 길을 지나던 어느 여름날의 일이었다.

 

 

때 이른 잠자리 떼가 철 모르고 분주하던 여름이었건만... 그 날 따라 여름 티를 내려했는지 날은 제법 무더웠고, 대기 중 습도는 불쾌감을 부추기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중구청을 들러 일을 보다가, 몇 가지 번거로운 일의 반복으로 짜증이 났던 탓일까...??

돌아갈 때 지나던 차이나 타운을 걷는 나의 기분은 다른 날보다 많이 처져 있었다. 고단한 인생이라니...

 

색다른 이곳 분위기에 기분이 전환될까 싶은 마음에,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가는데...

번뜩 눈에 들어온 네 글자... 苦盡甘來

 

마침 길 가에 서 있던 아저씨의 민소매로 나온 팔뚝 위에 퍼렇게 새겨진 문신에는 가로 쓰기 4글자 한문으로 또박또박 '고진감래'라고 쓰여 있었다. 

(화교가 많은 동네라 문신도 한자로 새겼는지 몰라.. ^^ )

 

 

고진감래.     고진감래!     고진감래?

 

처음 '고진감래'는 한자로 쓰여 있다고 못 읽을 내가 아니라는 나의 안 무식을 확인하는 자위이고... (여기서 안 무식이란.. 노 아웃을 안 아웃이라고 표현하는 식의 내 언어습관 일부를 노출하는 대목이다.)

 

두 번째 '고진감래'는 그래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음에 대한 흐뭇함이었다면...

 

세 번째 '고진감래'는 과연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고 해석하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괴로울 고, 다할 진, 달 감, 올 래... → 괴로움을 다해야 달콤함이 온다. 그래..??

 

그럼 고통을 다 하기 전엔 즐거움도 오지 않는다는 말이잖아! 정말 잔인한 인생이군!!

 

순간, 삶에 대한 나의 생각에는 더 깊고 짙은 어둠이 깔리고 말았다. 세상을 보는 나의 안목은 더 넓어졌을지언정 그 시야에 비추이는 것은 밝음이 아니라 캄캄한 암흑이 되어버린 것이다.   득도(得道)...  수양은 오랜 기간 하지만 득도하는 건 순간이다. 

선(禪)의 세계에서도 어떤 화두를 깨는 순간에 도를 얻는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설명해야만 삶이 제대로 이해되는 현실이 더없이 슬퍼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5. 망(亡) 아무개...

 

얼마 전 나는 나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른 아침.. 출근길.. 차창 밖으로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의 삶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거다. '나는 왜 사는가??', '지금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 걸까??'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지금의 나의 생활이... 내가 원하는 삶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고...  그런 나의 하루하루가 내가 원하고, 즐거움을 구할 수 있는 그것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데...

 

내가 없고... 내 생활이 없는... 나를 과연 인간으로서 살아있다 말할 수 있는 건지?

 

결국, 나의 대답은 사망선고였고, 차창 밖... 거리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삶 또한 나의 그것과 별다를 게 없을 진데... 그들에게도 사망진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모두가 죽어버린 세상에 빈 껍데기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쏙 빠져버리고... 사람들의 이목이나 입방아에 오르지 않으려 남만큼만 사는 생활 속에선, 살아있는 나를 발견할 여지는 어디에도 없는데 이런 삶을 힘들게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래도 살고는 싶었는지... 아니면 그나마 서푼짜리 인생에 대한 연민에서였는지...

얼마를 고민하다가 한 가지 위안이 될 만한 말을 하나 찾아내고 말았다.

 

"죽지 못해 산다."  그래 죽지 못해 산다. 나는 죽었다고 불평이지만.. 그나마 나처럼 죽지 못해서 사는 사람도 있다.

 

 

6.  다시...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장치는 무엇인가..??  나를 강요하는 '보이지 않는 손'들과, 내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마저 인질화 시켜버리는 작금의 현실은 어디서부터 기인하는 것인가..??  사냥 물의 입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돌발적 행동과 빨리 고생을 다해 생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

 

 

어느 문제 하나 명쾌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이렇듯 무심하게 지나가건만... 이런 생각마저도 소비적인 것으로 분류되어 버리고 만다. 

 

 

나 자신을 철저히 죽이면 죽일수록, 육체가 사는 현실이 밉기만 하다.

 

 

이 세상 생명체중에 인간만큼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많이 하며 살아가는 생물이 또 있을까..??

 

 

 

 

위의 텍스트 파일들은... 그동안 제가 일기에 적었던 것들과 통신 동호회 게시판에 올렸던 글들 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글을 통해서도 교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당신과 이런 느낌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옮겨온 곳 : www.geoe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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